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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유정] 머문 기억 작성일2025.07.20 조회416

작성자GuGu

*본 글은 클로저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성 되었습니다.


맴맴-

한동안 들리지 않던 매미 울음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울렁차게 들려오는 매미 소리는 마치 여름이 찾아왔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유정은 검은양팀의 대기실 의자에 앉아 허공에 띄워져 있는 인터페이스 화면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작전 구역에 나가 있던 슬비에게서 통신이 온 것이었다.

[유정언니, A구역 정리 다 되었어요.]

“그래, 수고했어 슬비야. 많이 덥지? 얼른 복귀해서 숨 좀 돌리렴.”

[네. 세하랑 제이씨 쪽까지 마무리 되면 바로 복귀 할게요.]

띠링-

유정은 슬비와 주고 받던 통신을 마무리하고, 펼쳐져 있는 업무용 노트북을 통해
이번 검은양팀의 작전기록 영상을 돌려 보았다.

“흐음. 확실히 팀워크가 많이 좋아 졌네.”

벌써 검은양팀의 관리요원으로 지낸 지가 5개월이 훌쩍 넘었다.
그들의 관리요원으로 처음 발령 받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지나가고 무더운 여름이 찾아 오다니.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지.

유정은 낮게 웃으며 펼쳐져 있는 영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때마침 화면에는 검은양팀 아이들의 보호자이자, 교관 역할을 맡고 있는 제이의 모습이 비춰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그때 보았던 불꽃은 보이지 않네.”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유정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면 속 제이는 과거 차원 전쟁 시절 부터 겪었던 실전을 바탕으로 확실히 검은양팀 아이들보다
노련한 싸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제이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유정은 제이의 주먹을 감싸고 있는 너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푸른 불꽃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나를 감쌌던 불꽃이.

유정이 조용히 지난 과거의 기억을 희미하게 그려내려고 할 때,

우당타다당-

벌컥-

“유정언니! 저희 왔어요. 히히-”

꽤나 소란스럽게 등장 하는 그들의 모습에 반쯤 넋나가 있던 얼굴을 홱 들어올렸다.

두 눈동자를 빛내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내고 있는 유리가 대기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탓에
유정은 강제로 과거의 회상을 끊어낼 수 밖에 없었다.

“어.. 다들 왔니? 고생 했어. 제이씨도, 수고 많았어요.”

유정은 냉장고에 있는 이온음료와 녹즙을 간단하게 챙겨 대기실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검은양팀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차원종들과의 싸움에 땀을 많이 흘렸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채로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았다.

“고마워, 유정씨. 유정씨의 센스 덕분에 맛있게 녹즙을 마실 수 있겠어.”

제이는 피식 하고 웃으며 유정이 냉장고 안에서 꺼내준 녹즙을 들어올렸다.

유정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그런 제이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살포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뭘요. 아이들과 함께 차원종들과 싸워주고 있는 제이씨에 비하면… 이정도는 별거 아니죠.”

유정은 어깨를 으슥이며 이온음료를 마시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하도 더위 속에서 차원종들과의 싸움에 꽤나 지쳤는지, 웬일로 게임기 보다 이온음료를 먼저 찾아
손을 뻗고 있었다.

슬비는 유정에게 오늘 정찰하고 왔던 구역의 작전 기록을 공유하며, 오늘 저녁까지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작전 결과 내용을 마무리 지었다.

“언니, 언니! 유정언니! 오늘은 이제 더이상 작전 구역에 안 나가도 되는거죠?”

유리는 슬며시 유정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히- 하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유정은 그런 유리의 모습에 못 말리겠다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랑 제이씨가 A구역을 마무리해주고 난 이후로 주변에 위상력은 더이상 감지되지 않았어.
유니온 본부에서도 재차 한번 더 확인했고.”

“그러면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는 자유라는거죠? 야호! 안그래도 오늘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빙수가
먹고 싶었거든요!”

“빙수?”

“네! 아까 돌아오는 길에 애들이랑 아저씨랑 같이 빙수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언니도 같이 가요!”

“그래, 유정씨. 유정씨도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으면 우리랑 같이 시내에 나가보는거 어때?”

제이가 녹즙을 쮸읍 빨아 마시며 유정에게 말을 건냈다.

검은양팀과 다같이 외출이라…

그들과 어디를 가던 늘 항상 사고를 부르는 탓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지만…
제이씨와 유리가 이렇게 말하니 거절을 하기에도 어렵다.

“그래요, 좋아요.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늘 작전 내용이랑 녹화 영상들 유니온 본부 쪽에
전달만 하고 준비해서 나가자고요. 빠르게 끝낼 게요.”

“얏호! 얼마만에 빙수냐- 미스틸! 오늘 우리 빙수 한가득 먹고 오자고!”

“네! 유리 누나! 오랜만에 먹는 빙수라서 너무 기대돼요!”

저렇게 들뜬 유리와 미스틸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거절을 하겠어.

유정은 검은양팀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재빠르게 유니온 본부 쪽으로 작전 기록을 전달 했다.

투명 인터페이스 화면에 보여지고 있는 전달 로딩창이 100%가 되었을 때 쯤, 띠링 하고 전달이
완료 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유정은 신속한 손놀림으로 인터페이스 화면을 종료 시키고,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업무 보고서와
노트북을 정리한 뒤 검은양팀과 함께 대기실을 벗어났다.

“하… 엄청 뜨겁네.”

순간적으로 확 와닿는 뜨거운 햇빛에 유정의 미간이 한껏 좁혀졌다.

“이런. 유정씨, 많이 뜨겁지?”

그런 유정의 모습을 알아챈 제이는 큰 손을 펼쳐 유정의 눈 위로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주었다.

그런 제이의 행동에 흠칫 놀란 유정은 제이쪽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유정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진 탓에 유정의 목이 제법 뒤로 젖혀졌다.

“아… 제이씨. 고마워요.”
“별 말씀을.”

햇빛이 제이의 노란색 선글라스에 반사되자, 제이의 눈앞을 가리고 있던 짙은 렌즈가 조금 옅어지는 듯했다.
유정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의 눈매가 어렴풋이 보여지고 있었다.

만약 그 자신이 감추고 싶어 했던 눈매가 이렇게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이렇게 무심한 한마디를 내뱉았을 것이다.

선글라스를 껴도 소용이 없군. 다들 무서워하는 이 눈매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제이의 음성이 속삭이듯이 조용히 유정의 귓가로 들려오는 듯했다.

다들 무서워하는, 눈매라…

적어도 유정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 였다.

물론 제이의 눈매는 꽤나 날카롭게 보여져 그와의 첫 만남에는 조금 움찔하기는 했다.

그러나 유정은 오히려 무섭기는 커녕 그 눈매가 좋았다. 때로는 차갑게 보여지고 있는 저 눈매가 이 남자를
스쳐 지나간 무수히 길고 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유정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 유정씨? 괜찮나? 너무 멍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
“내가 그렇게 잘생겼다는 듯이 쳐다보면 곤란하다고, 유정씨.”
“무, 무슨 소리에요 제이씨! 결코 그런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시라고요!”

유정은 얼굴이 붉어진채로 자신의 이마에 살포시 닿아 있는 제이의 손을 홱 밀쳤다.

그러고는 앞에서 신나게 떠들며 걷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유정의 귀가 붉게 물들어져 보여지고 있다면, 그건 제이의 착각일까.

***

-신서울의 시내 어느 한 지점-

36도를 훌쩍 넘는 기온 탓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런 더위에도 불구하고 시내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같은 신강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정미에게 유명한 빙수 가게 하나를 추천 받은 유리가 가게 이름을 슬비에게
전달하자, 슬비는 곧바로 스마트폰 지도를 사용하여 가게 쪽으로 걸어 나갔다.

“미스틸! 미스틸은 무슨 빙수 먹고 싶어?”

유리는 옆에서 열심히 걷고 있는 미스틸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으음- 저는 민트 빙수가 먹고 싶어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상쾌한 민트가 좋지 않을까요?”
“민, 민트? 하하하- 그, 그렇구나… 으음, 그러면 세하는? 세하는 무슨 맛으로 먹고 싶어?”

뿅뿅. 띠리링. 꽤나 귀여운 효과음을 내고 있는 게임기를 손에 든 세하가 그 어느 때보다 집중적으로 게임기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으이구. 내 말은 들리지도 않겠구만. 유정언니랑 제이 아저씨는요?”

유리는 뒤에서 걷고 있는 유정과 제이쪽으로 홱 몸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물어오는 유리의 질문에 흠칫 놀란 유정은 곰곰이 생각하다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나는 괜찮으니까, 다들 먹고 싶은걸로 시켜 먹으렴.”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그러면 미스틸, 미스틸이 먹고 싶어하는 민트 빙수랑 슬비가 좋아하는 딸기 빙수랑 달달한 초코 빙수! 이렇게 시켜볼까?”
“네! 저는 좋아요. 그런데… 저희가 다 먹을 수 있을까요?”

미스틸은 귀엽게 미간을 찌푸리며 유리에게 물었다.
유리는 그런 미스틸의 모습에 호탕하게 웃으며 엄지를 척 치켜 세워 보였다.

“당연하지- 이 서유리님의 먹성을 아직 미스틸이 잘 모르구나?”

미스틸은 유리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정말로 유리누나라면 빙수 2개 쯤은 거뜬히 혼자서 먹고도 남을 것 같애.

미스틸은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스마트폰과 가게들을 번갈아 가며 걷고 있던 슬비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런 슬비의 뒤로 게임기를 내려다 보며 뭣 모르고 걷고 있던 세하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춘 슬비를 보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 뒤로 제 가슴 쪽과 살짝 부딪히고 말았다.

“어엇- 야, 이슬비! 그렇게 갑자기 걸음을 멈추면 어떡하냐?”
“…이세하. 오히려 짜증을 내야 되는건 내 쪽 아니야? 그러게 누가 길거리에서 게임기만 보고 걸으라고 했어?”

슬비는 고운 미간을 좁히며 세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으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세하의 모습에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얘, 얘가 이렇게 뒤에 서 있었을 줄이야. 깜짝 놀랐네…

“자자! 슬비야, 세하야. 싸우지들 말고- 그나저나, 우리 벌써 다 온 거야?”
“응. 이 골목길 모퉁이만 지나면 정미가 말했던 가게가 나와. 그리고, 이세하. 앞으로 게임기 보면서 걸을 거면 내 뒤에 서 있지마. 알겠어?”
“쳇. 알겠으니까 잔소리는 그만해.”
“야! 이건 잔소리가 아니라-“
“하하하, 슬비야! 고운 미간 그만 찌푸리고 우리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이제 점점 더워서 땀이 나려고 그래… 그치, 미스틸?”
“네, 유리누나… 유리누나 말대로 우리 빨리 들어가요, 슬비누나. 네?”
“…휴. 알겠어.”

투닥 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생기가 제법 넘쳐났다. 유정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제이와 나란히 걸음을 맞추고 있는 제 발을 내려다 보았다.

이상하다. 일부러 아이들의 뒤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제이씨의 걸음도 이렇게 느렸나?

유정은 제 보폭에 맞춰 걷고 있는 제이의 걸음걸이를 내려다 보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유정씨. 유정씨도 그렇게 밑을 보면서 걷고 있으면 세하 동생처럼 부딪히니까 조심하라고.”
“네? 아아, 그렇죠…”

유정은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놈의 더운 날씨가,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 틀림 없었다.

아이들의 뒤를 따르며 붉어진 얼굴을 손 부채로 식히고 있을 때 즈음, 어디에서 인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땅의 지면 위로 꽤나 큰 진동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또다시 들려오는 비명소리.

유정은 걷고 있던 걸음을 멈췄다. 그녀를 뒤따라 걸음을 멈춘 검은양팀의 아이들과 제이는 금세 얼굴이 굳어졌다.

평화롭기만 했던 시내 한 가운데에, 또다시 차원종이 나타나는 소리가 곧이어 들려왔다.

***

“여러분! 어서 이 곳에서 벗어나세요! 저 골목길 쪽으로 내려가면 이 근방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으실 거에요!
자자, 침착하게 움직이세요.”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던 유정은 바지 주머니에서 곧바로 이어폰을 꺼내어 착용했다. 슬비가 곧바로 유정에게 통신을 연결해 오던 참이었다.

삑.

[유정언니! 시내 외곽 구역이에요. 외곽 구역 쪽에서 차원종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뭐? 외곽 구역에서…?”

[네. 저희가 아까 전에 정리했던, 그 A구역에서 또 차원종이 나타났어요.]

슬비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많이 당황해 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상했다. 분명 그 구역은 검은양팀이 제대로 사후 처리까지 완료 했고, 유니온 본부에서도 더이상의 위상력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달 받은 구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왜…?

“…일단, 검은양팀은 신속히 앞에 있는 차원종들을 처리해줘. 분명 아까와 같은 C급의 차원종들일 거야.
나는 곧바로 대기실 쪽으로 가서 유니온 본부와 통신을 연결 하도록 하겠어. 그리고 대기실에 도착하는 대로 검은양팀 전체에게 통신 할게.
나머지 팀원들 한테도 그렇게 전달해줘. 그때까지… 조금만 버텨줘, 슬비야.”

[네, 언니. 저희 대기실까지 조금 거리가 있으니까, 부디 조심하세요.]

띠링.

조심하라는 슬비의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을 끝냈다.

유정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내 한복판을 북적이고 있던 시민들이 무사히 대피를 끝내, 아까 전과 달리 시내의 거리는 휑했다.

유정은 곧빠르게 검은양팀의 대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뛰는 중간 중간 구두의 굽이 갈라진 땅바닥 틈 사이에 걸려 넘어질 뻔한 걸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헉헉. 더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정리했다.

“하…. 하필 오늘 같은 날 구두를 신고 오는게 아니었어.”

유정은 신고 있는 구두를 원망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땅바닥에 산산조각난 돌맹이에 긁혀 엉망이 된 검은 구두를
가차없이 벗어 손에 쥐었다.

턱끝까지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으로 대충 훔친 유정이 다시 뛰려 던 순간이었다.

유정은 자신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한 빌딩 옥상에서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눈살을 찌푸리며 뜨거운 햇살 아래에 서 있는 남자를 조금 더 또렷이 보기 위에 집중했다.

“보랏빛…?”

저게 뭐지?

유정은 남자의 주위로 옅게 일렁이고 있는 보랏빛의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표정을 굳었다.
그의 주위에 일렁이고 있는 저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확실한 건 저 남자를 발견한 이후부터 무언의 불안감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물 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대로 놓아두면… 큰일 날 것만 같은 느낌.

유정은 망설임 없이 수상한 남자가 서 있는 빌딩 쪽으로 뛰었다.

재빠르게 빌딩 안으로 들어선 유정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찾아 눌렀다.

띵-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닥 위로 시민 2명이 쓰러져 있는게 보였다.

“이봐요! 괜찮아요? 정신 차려 보세요!”

유정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당황한 채로 쓰러져 있는 그들의 몸을 살펴 보았다.
겉으로는 눈에 띄는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코 밑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옅은 숨이 느껴졌다. 다행히 이들은 잠시 기절 한 듯했다.

유정은 쓰러져 있는 이들의 몸을 조심스레 일으켜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조심히 옮겨 앉혔다.

분명, 지금 이 건물 위에 있는 남자가 이들을 기절 시켰을 확률이 높다.

유정은 맨 꼭대기 층인 20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문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혹시나, 차원종이면 어떡하지?

총 조차 가지고 있지 않는 내가 그 남자를 결코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이 빌당 밖으로 도망치기에는…

띵-. 21층 입니다.

이미 늦었다.

유정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유정의 눈앞에 나타난 옥상의 문이 반쯤 열려져 있었다.
반쯤 열린 문 틈 사이로 알아 들을 수 없는 일종의 주문을 내뱉고 있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유정은 미간을 좁히며 문을 조심스레 열어 젖혔다.

뜨거운 공기가 한 순식 간에 유정의 몸을 덮쳤다.

지이이잉-

꾸르륵. 꾸웨에엑-

알 수 없는 남자의 주문을 끝으로 남자의 발밑 아래에 펼쳐여 있는 검은 가방 안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그르르륵. 그으으윽!!

“차원…종…?”

유정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검은 가방 안에서 차원문 없이 차원종들이 허공을 갈라 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유정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며 뒷걸음을 치자, 반쯤 열려있는 문 손잡이와 유정의 손아귀에 있던 구두의 굽이 부딪혀 나지막한 소음을 냈다.

작은 소음이었지만 남자는 충분히 들었다는 듯이, 천천히 유정이 서 있는 쪽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헉…!”

남자의 얼굴은 알 수 없는 검은 붕대로 꽁꽁 둘러싸여져 있었다.

그나마 형체를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검은 붕대 틈 사이로 소름끼치도록 빛내고 있는 붉은색의 눈동자 뿐 이었다.

“흐음…. 그대가, 검은양팀의 관리요원인가?”
“!!!”

우리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그대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놀라운가?”
“…당신은, 대체 누구시죠?”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네. 그대들이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거이지 않나?”

남자의 눈동자가 제 발 밑에 있는 상자 쪽으로 옮겨졌다.

유정은 남자의 시선을 따라 상자 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어느 새 차원종의 몸이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대체…”
“가능한 일이냐고? 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이 순간 순간이, 진실일세. 그대들이 없애고자 했던 이들이,
이렇게 쉽게 세상을 밟으려고 하지를 않나.”

유정의 손끝이 떨려 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이곳에 더 있다가는 분명 저 남자의 손아귀나, 지금 이 곳으로 튀어나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저 차원종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지? 어떻게…

지직- 지지직-

[…씨! 유정씨!]

순간적으로 유정의 귓가에 제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유정은 이어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제이씨?”

[지금 어디지? 대장 한테서 들었어. 대기실에 도착하는 대로 우리 쪽 전체에 통신을 연결 하겠다고.
그런데 소식이 없어서 말이야.]


“아… 제이씨…”
“후훗. 그대의 검은양 목소리인가?”

[…유정씨. 지금 누구랑 있는거지?]

제이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런. 내 목소리를 들었나 보군.”

남자는 픽 하고 웃으며 유정과의 거리를 점차 좁혀 나갔다.

유정은 제 쪽으로 느릿 느릿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옥상을 벗어나려고 했으나,

쾅-!!

“꺄악!!”

열려져 있던 옥상 문이 남자의 손짓 한번에 쾅 하고 굳게 닫혀져 버렸다.

그에 깜짝 놀란 유정은 옥상 난간 쪽으로 몸을 옮겼다.

유정의 비명을 들은 제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다시 들려왔다.

[유정씨! 괜찮아? 무슨 일이지?!]

“제이씨. 우선… 침착하게 들어주세요. 슬비랑 통신을 끝내고 대기실로 향하던 중에, 한 빌딩 위에 서 있는 정체 모를 남자를 발견했어요.
그를 발견 하고 옥상 위로 올라왔는데…”

유정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똑똑히 봤어요. 남자가… 차원종을… 소환 시키는 것을요.”

[뭐…?]

“이런. 결국 그대의 검은양들도 알게 되어 버렸군. 주인님이 말씀하신 예언이, 조금 앞당겨 지겠어.”
“주인님…? 도대체 당신의 정체는 뭔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내 정체를 알 필요는 없다네. 지금 그대는…”
“…뭐…?”

유정은 주저 앉아있던 몸이 점차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검지 손가락이 유정을 가리키고 있었고, 남자의 손가락이 위로 향할 수록 그에 따라 유정의 몸도
점점 공중으로 부유 하듯, 올라갔다.

“그대의 검은양들은 멀리 떨어져 있나 보군.”
“이게 무슨 짓이에요!”
“바로, 이런 짓이지.”

유정의 몸이 남자의 손가락 위치에 따라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점차 뒤로 밀려 나갔다.

어느 순간 옥상 난간 바깥으로 밀려난 유정은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 남자, 나를 떨어뜨려 죽이 려고 하고 있어!

“아쉽게도 그대를 구할 검은양은 없겠어. 안그래?”
“…당신이 원하는 목적이 뭐죠?”
“나는 그저, 나의 복음이 그대의 검은양들에게 닿기를 바랄 뿐이야.”
“뭐라고요…?”

계속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을 뿐인 남자는 유정을 가리키고 있던 손가락을 거두었다.

그 순간 유정의 몸은 한 순식 간에 건물 밑으로 추락했다.

“꺄아아아악-!!”

허공을 가르며 끝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유정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대로…, 정말 난 이대로 죽는 것일까?

왜인지 모르게 이 순간 제이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오른 유정은 꽈악 감고 있던 눈을 살포시 떴다.

빌어먹게도, 땅으로 추락하는 이 순간 마저도 제이씨의 얼굴을 생각 하다니.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왜 하필 그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난 것인지, 그리고…

“유정씨!!!!”

덥썩-!

나를 구하는 이가, 왜 하필 또 이 남자인 것인지.

타닥-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유정을 간신히 끌어당겨 품에 안은 제이는 사뿐히 바닥 위로 착지했다.

유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품에 안고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제이를 하염없이 올려다 볼 뿐이었다.

대기실 앞에서 햇빛을 막아주던 그 순간처럼, 이번에도 이 남자의 눈매가 선글라스 사이로 비춰지고 있었다.

“괜찮아, 유정씨?”
“…제이,씨…”

제이의 날카로운 눈매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제이의 눈동자와 허공에서 얽혀지는 순간,

유정의 시간은 잠시 멈춰지고 16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괜찮아?’
‘아…’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이는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은발의 머릿색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푸른색의 강렬한 불꽃이 분명 소녀의 코앞에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그 불꽃은 뜨겁기는 커녕 가슴 안까지 따스함을 안주겨는 듯했다.
따스한 푸른 불꽃.

한 소년의 품 안에 안겨져 있던 소녀는 그렇게 느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고, 소녀의 몸을 안고 있는 소년의 품 안은 불꽃처럼 따스했다.

그날이 바로 제이와 유정의 첫 만남이었다.

13살의 유정은, 18살의 제이를 그렇게 만났다.


“유정씨! 괜찮은거지?”

제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유정의 귓가를 울렸다.
유정을 품에 안은 제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네…. 제이씨가… 또 한번 더, 저를 구해주셨군요.”

유정은 두 눈을 휘어 예쁘게 웃었다.

그날, 나를 구해 줬던 소년이 멋진 어른이 되어 다시 나타난 제이에게,

유정은 참 예쁘게도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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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를 주 캐릭으로 키우고 있다가 부산 센텀시티에서 제이와 유정의 스토리에 국뽕이 차올라
무수히 많은 고민 끝에 솜씨 없는 글로 나마 제유 커플링의 한을 풀어 보았습니다.

클로저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적었으나, 전성기 시절의 힘을 일순간 되찾은 제이가 유정의 몸 속 안에 있는 마스테마를 제거했을 때,
만약 어린 시절의 유정을 전성기 시절의 알파 나이트가 구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시작으로 써내려 갔고, 이렇게 글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클로저스 첫 CBT 시절 때부터 꾸준히 해오면서
(물론 중간에 클태기를 겪었을 때도 있었지만...)
캐릭터 하나 하나에 담겨져 있는 스토리와 클로저스의 세계관이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클로저스의 흥행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 내용이 매끄럽지 않는 부분이나 묘사 등은 내용의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계속해서 수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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