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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그는 초라한 비문(碑文)조차 없을 테지 작성일2025.10.15 조회396

작성자애쿼머린

※ 대충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볼프강 if 이야기(당연히 날조 있음)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아니 가지 않으려고 애쓰던 고향에 느긋하게 갈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생겨버렸다.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파이는 물론 제자들도 이 기회에 한 번 다녀오라고 등 떠밀다보니 얼떨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제법 큰 짐을 들고 볼프강은 오랜만에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옮겼다. 본인이 속한 팀의 거점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고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볼프강은 애써 사냥터지기 성에 머무르려고 했다. 어쩌다 휴가가 생긴다고 해도 휴양지로 유명한 나라를 가지, 단 한 번도 볼프강은 독일 내에 있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다녀가지 않았다. 적어도 사냥터지기 팀 멤버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기차를 타고 가도 의외로 금방 도착하는 거리이다. 드디어 고향에 방문한다는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볼프강은 이어폰을 꼽았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심하지 않을 오락거리 정도는 필요했기에.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성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볼프강은 흘깃 남성이 읽고 있는 책 제목을 보았다. 『Goethe's Faust』, 볼프강도 익히 잘 아는 책이다.

   

 어떤 음악을 들을까 고민하면서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 거니 향수라도 느낄 겸, 볼프강은 어렸을 때 부모님에 의해 항상 듣던 바이올리니스트의 앨범을 찾아 재생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이 자신과 거의 비슷했었더랬지. 새삼 떠오르는 기억에 볼프강은 살짝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도착한 고향에서 볼프강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자신의 고향집이 아닌, 마을 한 구석에 위치한 공동묘지였다. 누가 볼 사람도 없지만 빈손으로 가는 건 뭣해서 적당히 보이는 꽃집에 들려 적당히 화려한 색상의 꽃을 샀다. 화사한 색의 꽃다발을 골랐기 때문인지 누구에게 선물할 거냐는 꽃집 주인의 말에 볼프강은 겸연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볼프강은 놀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묘지 입구 쪽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

   

 그를 무심코 익숙한 호칭으로 부르려고 했다가 볼프강은 아차 싶어 다시 목을 가다듬고 그를 불렀다.

   

 “레옹 요원……?”

 “아, 볼프강 슈나이더 요원님이시군요.”

   

 ‘레옹’ 이라고 불린 10살 즈음으로 보이는 소년은 볼프강을 보고 미소로 화답했다. 레옹은 누군가를 추모하려고 여기에 들린 것처럼 온통 검은색 복장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볼프강은 조금 착잡해짐과 동시에 묘한 기대감도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여기엔 어쩐 일로…….”

   

 이 질문에 희망이 문득 서려 있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했는데, 레옹은 다행히 그걸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저 정직하게 볼프강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대답을 해주었다.

   

 “총장님께서 지인분의 성묘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따라온 거예요.”

 “총장님이 여기 계신다고?”

 “네. 총장님은 혼자 성묘하고 싶다고 하셔서 전 여기서 총장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

   

 그러면서 어린 아이 특유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볼프강을 올려다보며 물어보았다.

   

 “그러는 볼프강 요원님께서는 여기에 어쩐 일이신가요?”

 “아, 나도 성묘…….”

 “그런가요? 신기하네요! 전 볼프강 요원님이 총장님을 찾아온 줄 알았거든요.”

 “…….”

   

 볼프강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이곳은 내 고향이고, 내가 이 공동묘원을 찾은 것은 내 어머니의 성묘를 하기 위해서라고 사실대로 다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충동이 적잖게 들기도 했지만 볼프강은 강인한 인내심으로 기어코 참아냈다.

   

 “그럴 리가, 그저 아주 기막힌 우연일 뿐이라고.”

 “그래도 너무 신기해서요.”

 “그런가……?”

 “그럼 볼일 보시도록 하세요. 만약 총장님을 만나시게 되면 꼭 인사 나눠주시고요.”

 ‘나도 그런 예의범절 정도는 알아서 잘 하는 나이인데.’

   

 레옹을 보며 볼프강은 속으로 아버지에게 투정부리는 아들마냥 투덜거렸다.

   

   

   

   

   

 ♬♪~~

   

 “자네로군.”

 “……여기서 도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보면 모르나? 성묘지.”

   

 무슨 성묘를 카세트라디오로 음악을 틀고서 여유롭게 홍차를 홀짝이면서 하냐고 볼프강은 반문하고 싶었다. 힐데가르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네가 올 줄 알았네.”

 “……혹시 파트너한테 보고 받았나요?”

 “절반 정도는 그렇다는 말로 대신하지.”

   

 볼프강은 오늘 이미 여러모로 피곤하여 힐데가르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어느 비석 앞에 자신이 가져온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노란색의 꽃들이 가득한 꽃다발을 보며 힐데가르트가 말했다.

   

 “라나가 좋아하겠군.”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으니까요.”

   

 볼프강의 어머니, 라나는 꽃을 좋아했다. 그래서 볼프강이 어렸을 적 살았던 집 앞 마당에도 거의 밀림을 방불케 하는 정원으로 만들었었다. 물론 지금 그 저택에는 정원 따위는 없겠지만.

   

 “나에게 같이 가드닝을 하자고 권유하던 그 때가 무심코 떠오르는군.”

 “저에게도 어머니는 그러셨어요.”

 “아마 레온에게도 그랬겠지.”

 “그러고 보니 입구에서…….”

 “만났나?”

   

 저 무심하게 사람 속을 뒤집는 근황 물음에 속이 뒤틀릴 것만 같았다. 분명 화를 낼 것 같았는데 볼프강의 입에서는 도리어 침착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을 여기에 데리고 오는 건 무슨 버릇입니까.”

 “말에 가시가 있군. 아니, 당연한 건가?”

 “…….”

 “자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네. 혹시 기억이 돌아올까 싶어서 데리고 온 거였지.”

 “돌아올 리가 없잖아요.”

   

 모든 일이 끝나고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타이밍에도 레옹은 결국 레온 슈나이더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걸 확인 받은 게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잃어버린 기억은 절대 돌아오지 못하는 거였다. 그 결과표를 받아들고 볼프강은 마음속으로 다시금 자신의 아버지의 신변을 정리했다.

   

 “그래도 세상에 기적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우리 총장님께서는 생각보다 낙관적이신 분이셨군요.”

 “나도 자네와 마찬가지로 아직 레온을 미처 떠나보내지 못했으니까. 내 친구가 다시 돌아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당연히 있지.”

 “……전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면 보나마나 잔소리만 잔뜩 할 게 분명하다고요.”

   

 볼프강의 다소 긴장이 풀린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악담(?)에 힐데가르트는 낮게 웃었다. 그러면서 앞에 놓인 비석의 새겨진 문구를 보았다. 라나 슈나이더. 익숙한 지인의 이름이다.

   

 홀로 이곳에 있는 지인의 이름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하였다.

   

 “……라나의 옆에는 아무도 없겠지.”

   

 무심코 흘린 힐데가르트의 혼잣말에 볼프강은 그런 생각을 했다. 애초에 먼 훗날이 되어도 이런 비석조차 남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해도 레온 슈나이더의 이름은 고고학계 내에서는 여전히 남을 테지만. 그 정도로 남겨진다는 게 레온 성격이라면 만족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볼프강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전에 레온이 그에게 해주었던 중국 어느 곳에 위치한 아무것도 새겨진 것이 없는 비석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비문도 없이 그저 서 있는 비석의 의미는 학계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고 했다. 자신의 업적은 너무 위대해서 비석에 다 담아내지 못하기에, 혹은 자신의 업적은 어차피 후대에 악평만을 남길 것 같았기에 일부러 남기지 않았다는 둥.

   

 하지만 레온이 가장 좋아하는 가설은 이거였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이 각자 생각하라는 조금은 무심하고 귀찮은(?) 느낌의 그러한 것.

   

 레온은 이걸 가장 선호했다. 그것이 학자로서의 탐구심을 자극한다고 하였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볼프강은 그렇기에 레온 슈나이더는, 즉 자신의 아버지는 결코 자신의 제대로 된 비문, 아니 초라한 비문이 없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아할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힐데가르트가 가지고 온 카세트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미사곡의 몇 구절이 들렸다.

   

Dona eis requiem

Dona eis requiem

Amen

   

 “그럼 이제 슬슬 일어나볼까? 레옹이 기다리고 있겠어.”

 “……그러죠.”

   

 먼저 채비를 하고 떠나는 힐데가르트보다 한참이나 뒤에서야 비로소 볼프강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가지고 온 꽃다발은 거기에 그대로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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