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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배신자 작성일2026.04.23 조회460

작성자애쿼머린

※ 순교자의 언덕 이후 기억 삭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볼프강의 이야기
※ 약 볼프파이 요소





 “파트너!”

   

 우악스러운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면서 들이닥쳤다. 소리의 근원을 향해 소마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댔다. 조용히 하라는 거였다. 소마와 아이들 옆에는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파이가 보였다.

   

 소마가 평소의 목소리보다 두 옥타브나 낮춰서 볼프강을 꾸짖었다.

   

 “그렇게 시끄럽게 들어오면 어떡해요! 환자한테는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요!”

 “그… 미안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자기가 열 배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이럴 때만큼은 괜히 자기보다 더 어른스럽게 군다. 아무래도 ‘환자’의 앞에서는 드는 감정이 괜한 것이 아닌 것이겠지. 소마는 어떤 지점을 기준으로 자신이 고칠 수 없는 ‘환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은 눈앞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스승 중 한 명이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저런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것이겠지. 나아질 수 있도록 돕고 싶지만 마음의 문제는 오래도록 치유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파트너가 전투 지원 중에 쓰러졌다는 소식과 함께 극도로 예민한 상태의 제자를 마주보는 건 마음이 편치가 않다.

   

 볼프강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려졌다.

   

 “상황 보고 좀 아무나 해주겠나.”

 “생명에 지장은 없어요. 다만…….”

 “다만?”

   

 소마가 이상할 정도로 볼프강의 눈치를 보며 뒷말을 덧붙였다.

   

 “시간 정지…를 쓰셨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병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방 안의 온도나 습도가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킨 건 아니었다. 볼프강이 성큼 소마 앞으로 다가왔다. 올려다보는 볼프강의 표정이 어찌나 대단한지 소마는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일단 경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재리가…….”

   

 볼프강의 질문에 굳어버린 소마 대신 옆에 있던 루나가 대신해서 대답해주었다. 이 상황에서 어느 누구라도 그래도 아무 부작용 없을 거란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았다. 전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라면 입에 오르고 내리는 건 간단하였다. 그 말에 대한 책임감을 거의 지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그저 가뿐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소마가 자신이 치료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가지고 있다면, 볼프강의 트리거는 바로 이거였다. 파이가 시간 정지 능력을 사용하는 것. 정확히는 시간 정지 능력을 사용한 이후의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부작용’이 말이다.

   

 그 부작용에 한해서는 방금 전의 소마보다 볼프강이 훨씬 더 까칠하게 굴었다. 사실 아이들의 비정상적으로 볼프강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런 볼프강의 반응을 이전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딱 한 번, 고작 딱 한 번 폭발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에 대한 볼프강의 반응이 평소의 볼프강이 아니었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 분야에 웃프게도 일가견이 있는 소마는 바로 진단을 내렸다.

   

 볼프 쌤은 파이 쌤이 자신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싫은 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반응을 보일까봐 괜히 지금도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 사이에 감도는 무거운 공기를 볼프강이 모를 리는 없었다. 아이들은 지금 지나치게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생각되는 건 딱 한 가지 있었다.

   

 가슴이 지독한 기분으로 술렁였다. 금방이라도 욕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표출해서는 안 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때도 아이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 내뿜을 생각도 아니었다. 그 실수 하나로 지금 아이들이 얼마나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말이다.

   

 볼프강은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괜찮은 척 굴자. 그런 일 따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자.

   

 볼프강은 누워있는 파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진통제로 인해 잠들어 있는 파이의 뺨을 살짝 툭- 쳤다.

   

 “파트너도 참… 이렇게 잠꾸러기면 쓰나.”

   

 한껏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약한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못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의 어리숙함에 분통이 터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볼프강은 피식 웃었다. 방금 전 그 생각, 볼프강 슈나이더보다는 파이 윈체스터가 할 법한 분풀이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다.

   

   

   

   

   

 폭발했던 순간은 딱 한 번뿐이었다. 그때에도 파이는 시간 정지 능력을 사용하였고 똑같이 병원에 실려 갔다. 깨어난 파이에게 다가가 네 몸 간수 좀 잘 하라고 잔소리를 퍼부으려는 순간, 파이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볼프강을 보고 했던 그 한 마디가 시작점이었다.

   

 -누구…?

   

 장난치지 마,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볼프강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아니 의식하지 않으려고 내팽개쳐둔 감정이 먼저 튀어 올랐다. 거짓말 하지 마, 네가 날 잊어버렸을 리 없잖아, 질 나쁜 장난은 거기까지 해, 너마저 어떻게 날 잊어버릴 수 있어!? 그야말로 산발된 총탄처럼 그런 말들이 볼프강의 입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무차별적으로 쏟아낸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볼프강조차도 본인이 내뱉은 말들에 짐짓 놀라고 있었다. 내가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어째서? 그때였다. 결정적인 것이 볼프강의 입 밖으로 한 발 나갔다.

   

 -이 배신자……!

   

 볼프강은 영문도 모르는 파이를 향해 대뜸 배신자라며 헐뜯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걸 2분대 아이들이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가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때 볼프강이 파이에게 했던 망언들을 파이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시적인 섬망(譫妄) 증상이었고, 영구적인 장애는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다만 말을 내뱉은 당사자인 볼프강과, 무시무시한 얼굴로 파이의 어깨를 잡고 속사포로 파이를 비난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만 그 잔상을 잊기 어려웠을 뿐이었지.

   

 “하….”

   

 일단 병실 밖으로 나가, 병원 옥상으로 올라간 볼프강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서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숨을 땅이 꺼질 기세로 몇 번이나 쉬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추스르기는커녕 이전에 있었던 일도 주마등마냥 떠올라서 금방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쥐구멍은 아니더라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밑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 절벽 낭떠러지에 내몰린 느낌.

   

 누군가에게 잊히고 싶지 않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거라면 더욱이나. 그런 욕망이 자신 안에 아주 뿌리 깊게, 그리고 지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볼프강은 헛웃음이 나왔다. 순교자의 언덕에 있었던 일이 제법 크게 볼프강의 마음에 상흔을 남긴 모양이었다. 왜 그런 갈망을 가지고 있는 거냐고, 나란 사람은.

   

 정이란 정은 다 떼어놓은 상대였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아버지였다는 걸까. 그래서 받은 충격이 엄청 컸던 걸까. 아니, 그저 두 부자(父子)는 오해가 짙었을 뿐이었다. 아예 남남이라고 칭해도 될 관계도 아니었다. 그렇다, 레온은 그 시점 볼프강에게 남아 있었던 유일한 혈육이었다. 어딘가에는 살아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혈육의 부재는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수영을 못하는데 홀로 망망대해에 떨어진 듯한 쇼크였다.

   

 그 중에서 개최악은 결국 아버지와 화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없었다. 어느 누군가가 그런 위로를 했다. 기적적으로 아버지의 기억이 돌아올 수 있지 않을 거냐면서. 볼프강은 뜻밖에도 냉소적이었다. 그런 ‘거래’를 만든 이들은 철저하기 때문에 그렇게 감정에 움직여 사는 존재들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레온은 자신을 인류의 보존을 위해 바친 것이다.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레온은 기뻐하기보다는 투덜거릴 것이다. 자신의 기억이 돌아온다는 것은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겨 몽환의 주인과의 거래가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런 것까지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프강은 정말 레온과 쏙 빼닮은 아들 녀석이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비관적이기만 했다. 정말 그때의 충격을 다시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 공허한 눈빛과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소리. 자신과 ‘그들’은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생판 남이 되었을 때의 그 공포가 싫었다.

   

 ‘차라리 그런 공포를 다시 느낄 바에는…….’

   

 볼프강의 눈빛이 탁하게 가라앉았다. 차라리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살 바에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먼저 소멸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심은 실제로 그가 검은책을 더욱 열렬히 사용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정황을 아는 아이들은 경악하며 뜯어말렸고, 파이는 아이들만큼은 아니었지만 볼프강을 걱정하였다. 걱정으로 잔뜩 잔소리를 하는 파이를 똑바로 응시하며 볼프강이 말했다.

   

 -그 능력은 쓰지 마, 파트너.

   

 파이는 기가 막혔다. 지금 볼프강의 몸을 걱정하면서 검은책을 쓰는 걸 자제하는 잔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볼프강은 영 딴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파이의 걱정 어린 잔소리는 아예 듣지도 않은 것처럼. 파이는 기가 막혔다.

   

 -그거 선배도 마찬가지인거 아십니까! 선배가 잘못되면 저랑 아이들은 어떻게…….

 -어련히 잘 살 거야. 그 애들은 잘 자랐으니까.

 -…….

   

 그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짓눌려서 파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은 돌보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파이만큼은 끔찍이 아꼈다. 험악한 임무는 볼프강만이 출전하는 걸로 어느 사이 결정되었다. 오늘 임무도 나름 안전한 임무라고 하여서 파이와 아이들을 보낸 것인데, 파이가 시간 정지 능력을 조금 사용했다고 하니 미쳐 날뛸 뻔 했던 것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 차라리 나를 잊어버릴 거라면 내가 없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을 때에나 해 줘. 그러면 날 잊어버렸냐고 책망할 수도 없으니까. 애초에 네가 잊어버렸다고 해도 난 그 사실조차 모를 테니까.

   

 볼프강의 몸이 조금 움츠러졌다. 초여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옥상 바람이 차가운 탓이었다. 슬슬 병실로 돌아가서 걱정 한가득 중일 게 뻔한 말썽쟁이들에게 한 마디씩 해야겠다.

   

 자신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파트너 몸이나 잘 살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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